다자이 오사무 저자 | 김춘미 역 | 민음사 | 2012년 04월 10일 | 소설
총평 ★ ★ ★ ★ ☆
재미 ★ ★ ★ ★ ☆
유익 ★ ★ ★ ☆ ☆
추천 ★ ★ ★ ★ ☆
학창 시절 한번쯤 읽었던 고전 소설을 다시 읽기로 했다. 그 처음은 <인간 실격>이다. '기존의 두꺼운 벽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 자'라는 문장이 번뜩였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났다기 보다는 그 시절 읽었던 <인간 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와 책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의 느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책을 들어야겠다.
<인간 실격>은 불완전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가 녹여져 있다고 평받는다.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1948년 作으로 그의 완전한 소설로는 마지막 집필이다. 이 책을 끝으로 '다자이 오사무'는 그 해 6월 13일, 생일을 6일 남기고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투신 자살한다. 5번째 자살 시도가 끝내 성공으로 마무리된다.
사실 상 그의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지만 <인간 실격>은 1945년 8월 14일 연합군에게 패배를 통보하고, 암울했던 패전국에서의 인간 투영이 된 작품으로 기록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관점의 투영이다. <인간 실격>은 '요조'라는 극 중 주인공의 수기로 이루어진 '인간 실격'과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것으로 알려진 '유다'를 상상하게 만드는 '직소', 끝으로 작품의 해설로 나뉜다. 마지막 해설까지 완독해서 <인간 실격>의 의미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투영적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1945년 일본은 패전했다. 기본의 두꺼운 벽인 연합군 앞에 결국 무너졌다. '다자이 오사무'의 암울했던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부유하게 태어남과 동시에 절망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된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 모두 이상과 현실의 격(隔)이 너무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욱 벌어지는 격차에 그나마의 희망마저도 잃게 되었다. 작가와 요조 모두 한 때는 (나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작중(作中)에서 '요조'는 요시코를 만나 아주 잠시 평안한 순간이 찾아왔지만, 그마저도 요시코가 겁탈당하면서 깨지게 된다. 커다란 행복 뒤에는 커다란 슬픔이 오는 것처럼. 작가와 요조는 그렇게 다시 절망 속을 허우적 거리게 된다. '요조'는,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는 언제부터 인간으로서 실격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요시코를 만난 시점부터 요조는 안정을 찾아갔다. '다자이 오사무'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과연 그 때의 그들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물음의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때만큼은 모두 행복했었으면 싶다. 그래야 남은 삶의 절망에 이유라도 있지 않겠는가.
<인간 실격>의 요조는 술, 약, 여자, 자살 방조, 끝끝내 자살까지 인간으로서 타락의 끝을 보여준다. 다만 요조의 수기를 읽어내려가다보면 인간성을 잃은 사람이 아닌 누구보다 인간스러움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약한 인간 말이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들의 끝은 '도파민 중독'이다. 쾌락을 쫓는 인간상은 굳이 요조나 다자이 오사무가 아니어도 주변에도 많다. 수위를 낮춰서 생각하면, 새벽 시간에 들고 있는 핸드폰도 쾌락 아닌가. 도파민 중독이 아닌가. 우리 역시 그 정도가 넘치지 않을 뿐이지,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와 결을 함께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까지 들자 책이 끝났다.
학창시절 읽었던 <인간 실격>과는 다른 생각을 갖게 했으나 그 찝찝한 감정은 동일하다. 책이 끝나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 끝에 '나는 잘하고 있는가'라는 자기 성찰이 불쑥 나왔다. '다자이 오자무'는 마지막 회고록을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개인적 회고가 아니라 인간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출간 80년을 앞두고도 여전히 세계적인 소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무엇이며 어느 순간에 자'격'을 '실'추하는지 스스로 정의해볼 필요를 느끼게 하는 책이라는 한마디로 <인간 실격>을 읽기를 추천해본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 다음 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똑같은 관례를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큰 기쁨을 피하기만 한다면, 자연히 큰 슬픔 또한 찾아오지 않는다. 앞길을 막는 방해꾼 돌을 뚜꺼비는 돌아서 지난간다.
# 그럴싸한 대의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 만화가. 아아, 그러나 나는 큰 기쁨도, 큰 슬픔도 못 느끼는 무명 만화가
# 인간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 일본 근대 문확을 확립시켰나는 평가를 받는 자연주의 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에 뒷받침된 진지한 자기 모색의 문학
# 사회가 격변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 온갖 허위와 위선을 타파하고자 '혁명'을 지향하다 기존의 두꺼운 벽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 자가 목숨을 걸고 자기 파멸로 치닫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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